은혜와 진리가 충만한 사람
저는 이것을 관념적인 표현으로 보지 않습니다.
그들은 분명 뭔가를 보았습니다.
제자들이 보았던 영광은 과연 어떤 것이었을까요?
영광은 한 존재의 내면에서부터 솟아나오는 빛입니다.
그것은 참 설명하기 어려운 것입니다.
전봉준이 관헌에게 붙잡혀서 이송되는 사진을 보신 적이 있으십니까?
체구가 작은 사람인데도 불구하고 범접하기 어려운 기운이 느껴지지 않던가요?
그런 기운이 있는 것입니다.
모세가 하나님을 만나고 내려왔을 때 그의 몸에서 광채가 났다고 합니다.
물고기 잡이 이적을 체험한 베드로가 주님 앞에 엎드려
“주님, 나에게서 떠나 주십시오. 나는 죄인입니다”(눅5:8) 고백했던 것도
어떤 압도적인 기운을 느꼈기 때문일 것입니다.
소란한 도시 한복판에서도 마치 숲속의 빈 터처럼 고요하여
주위 사람들조차 고요함으로 물들이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와 잠시만 함께 있어도 들끓어 오르던 욕정과 미움과 시새움의 파도가 잔잔해지는 사람,
자아를 온전히 여의고 자기를 전폭적으로 내주는 사람 말입니다.
사람들은 그런 이를 통해 하나님을 봅니다.
요한은 바로 그런 경험을 ‘우리는 그의 영광을 보았다’는 말로 요약한 것이 아닐까요?
요한은 예수님이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였다고 말합니다.
충만하다는 말이 참 좋습니다. 충만함이란 넘침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자기 속에 가득 찬 것을 밖으로 내놓게 마련입니다.
불쑥 불쑥 화를 내는 사람은 자기 속에 화가 가득 차 있기 때문이고,
랄랄라 노래가 나오는 것은 속에 기쁨이 차 있기 때문입니다.
사사건건 어깃장 놓는 사람은 속에 불만이 가득 차 있기 때문입니다.
사랑의 심정에 북받친 사람의 입에서는 장미꽃 다발이 쏟아져 나옵니다.
그런데 예수라는 존재를 가득 채우고도 흘러넘친 것은 은혜와 진리였습니다.
은혜는 대가가 아니라 선물입니다.
주님은 모든 사람들에게 선물이 되신 분이십니다.
그들을 위해 당신의 목숨까지 내놓았으니 말해 무엇 하겠습니까?
예수라는 선물과 만난 사람들은 다 변화되었습니다.
병으로 고통 받는 이들은 치유함을 얻었고,
마음의 중심을 잃었던 이들은 삶의 통전성을 되찾았습니다.
왜 사는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몰랐던 이들은 분명한 삶의 방향을 찾았습니다.
예수님은 또한 어둠을 폭로하는 진리의 빛이었습니다.
예수 앞에서 귀신은 쫓겨났습니다.
오늘 우리는 무엇으로 충만합니까? 은혜와 진리입니까?
그렇다면 우리는 주님께 속한 사람입니다.
여전히 삶은 힘겹지만 우리는 예수라는 참 빛을 모신 사람입니다.
빛을 모신 사람답게 사십시오.
세상에는 우리의 사랑을 기다리는 영혼들이 많이 있습니다.
대한에서 입춘을 향해 나아가는 동안, 삶으로 역사의 봄을 만드는 이들이 되기를 기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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