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시판

졸업식 노래의 탄생 - 1946년 6월 6일

천국생활 2023. 3. 13. 12:57

 

● 졸업식 노래의 탄생 - 1946년 6월 6일

 

해방된지 겨우 1년.

중앙청에 성조기가 나부끼고 미군 육군 중장이 38도선 이하의 조선 땅을 통치하던 무렵,

군정청 편수국장 직함을 갖고 있던 외솔 최현배가 한 아동문학가를 찾았다.

 

“여보 석동. 노래 하나 지어 주시게.”

석동이라는 아호를 가진 이 사람의 이름은 윤석중(尹石重)이었다.

석동이라는 아호는 어느 신문에선가 그를 소개하면서 윤석동(童)이라고 잘못 쓴 걸 보고 춘원 이광수가

“석동이라는 아호가 좋네. 누가 지어 준 거요?” 라고 칭찬하면서 그대로 아호가 돼 버렸다고 한다..

 

“졸업식 때 쓸 노래가 마땅하지 않소. 그래서 외국 곡을 이것저것 가져다 쓰는 형편이니 석동이 하나 지어 줘야겠소.”

 

윤석중은 해방 직후

“새나라의 어린이는 일찍 일어납니다. 잠꾸러기 없는 나라 우리 나라 좋은 나라”를 작사하여 해방된 조선의 어린이들이 목청껏 ‘새나라 우리나라’를 부르게 해 주었던 그 사람이었다.

 

“빛나는 졸업장을 타신 언니께 꽃다발을 한 아름 선사합니다. 

물려받은 책으로 공부를 하며 우리들도 언니 뒤를 따르렵니다.”

 

윤석중이 또 급히 찾은 것은 작곡가 정순철이었다.

바로 <새나라의 어린이> <엄마 앞에서 짝짜꿍>의 작곡가.

 

정순철 작곡가의 아드님의 회고에 따르면 정순철 또한 가사를 받고 악상이 번개같이 스치고 지나간 것 같다.

허겁지겁 피아노를 두들기다가 악보에 콩나물을 급하게 그려 뛰어나가던 모습을 회상하고 있으니 말이다.

이 성미 급한 작사가와 작곡가는 설렁탕집에서 만났다.

“비이이잋 나는 조오올업장을 타신 언니께~~~잘 있거라 아우들아 정든 교실아.....”

원래 흥에 겨운 예술가들의 얼굴 두께는 빙산처럼 두터워지는 법.

 

설렁탕집에서 때아닌 고성방가는 “거 조용히 합시다!” 라는 지청구의 대상이 되고 말았다. 

 

졸업식 노래는 그렇게 엉겁결에 탄생했다. 하지만 그 가사와 가락은 결코 엉성하지 않았다.

 

“빛나는 졸업장을 타신 언니께 꽃다발을 한아름 선사합니다. 

물려받은 책으로 공부를 하며 우리들도 언니 뒤를 따르렵니다.”

 

하는 1절은 교과서도 제대로 없어 선배들 것을 물려받아 공부해야 했던 시대를 반영하고 있다.

(그래서 요즘 시대와는 좀 맞지 않는다)

 

그런데 뭉클한 것은 2절이고, 사실 2절을 부를 때 졸업식은 눈물바다가 되기 일쑤였다.

 

“잘 있거라 아우들아. 정든 교실아. 선생님 저희들은 물러갑니다."

그리고 또 나오는 ‘새나라’

”부지런히 더 배우고 얼른 자라서 새 나라의 새 일꾼이 되겠습니다.”

 

3절은 졸업이 아닌 다짐의 합창.

 

“앞에서 끌어주고 뒤에서 밀며 우리나라 짊어지고 나갈 우리들 강물이 바다에서

다시 만나듯 우리들도 이 다음에 다시 만나세.”

 

당장 편수국 전 직원들 앞에서 이 노래가 처음 불리워졌고

열화와 같은 호응을 거쳐 졸업식 노래로 공표된 것이 1946년 6월 6일이었다.

 

이 노래는 역시 커다란 환영을 받으며 각급학교에서 불리워졌다.

때아닌 돈벼락을 맞은 것이 당시로서는 몇 집 안되던 꽃집들이라고 한다.

각급 학교 졸업 때마다 꽃다발 주문 홍수가 일어난 것이다.

 

원래 윤석중의 의도는 “마음의 꽃다발”이었다고 하는데.....

 

그런데 이 윤석중 작사가와 정순철 작곡가는 한국 현대사의 격랑 속에서 크나큰 상처를 입거나 아예 실종되고 말았다.

윤석중의 아버지와 새어머니, 그리고 이복동생은 충남 서산에 살고 있었는데 새어머니 쪽이 좌익과 관련되었다고 한다.

전쟁 와중에 벌어진 피의 학살극에 윤석중의 가족은 몰살당하고 말았다.

 

윤석중이 원래 서산으로 피난오려던 것을 아버지가 “전쟁 통에는 떨어져 있어야 누구든 산다.” 고 만류했다고 하는데 그것이 천행이었던 셈이다. 

 

그러나 작곡가 정순철의 불행은 본인에게 찾아왔다.

다 피난간 학교(성신여고)를 홀로 지키다가 거의 서울이 수복되던 9월 28일경 인민군에게 납북되고 만 것이다.

이후 그의 생사는 알려지지 않는다.

해월 최시형의 외손자이자 의암 손병희의 사위였던 그의 제삿날은 그래서 수복 다음날인 9월 29일이 됐다.

 

후일 막사이사이상을 받은 윤석중은 이렇게 연설한다.

“정말로 국경이 없는 것은 동심인 줄 압니다. 동심이란 무엇입니까? 인간의 본심입니다.

인간의 양심입니다. 시간과 공간을 초월해서 동물이나 목성하고도 자유자재로 이야기를 주고받으며

정을 나눌 수 있는 것이 곧 동심입니다.”

 

윤석중은 그 어둠을 밝힐 빛으로 ‘동심’을 찾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졸업식 노래>는 그 중 하나였다.

 

“잘있거라 아우들아 정든 교실아 선생님 저희들은 물러갑니다.” 를 부르다가 끝내 엉엉 울고

“냇물이 바다에서 서로 만나듯” 을 젖은 목소리로 함께 하던 졸업식 풍경은

수 세대에 걸쳐 우리 나라 곳곳에서 행해진 살가운 역사의 한 페이지였는데......

 

 

 

'게시판' 카테고리의 다른 글

시대 분별력  (0) 2023.03.14
북한 지령을 받고 행동하는 민주노총  (0) 2023.03.14
대한민국은 이런 나라다  (1) 2023.03.11
한전 공대 투자위기  (0) 2023.03.11
현 시국상태로 간다면  (0) 2023.03.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