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요한 질문 세 가지(고후10:12-18)
그는 누가 진실한 하나님의 일꾼인지를 평가하는 기준을 우리에게 제시하고 있습니다.
바울은 자기를 비방하는 이들을 보며 "그들은 자기를 척도로 하여 자기를 재고, 자기를 기준으로 하여 자기를 견주어 보고 있으니,
어리석기 짝이 없습니다"라고 말합니다.
사람에게는 ‘기준이 되려는 욕망’이 있습니다.
여러분은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프로크루스테스(Procrustes)의 침대 이야기를 아실 것입니다.
그는 아테네로 가는 길목에 집을 지어놓고는 자기 침대에 사람들을 끌어들여 침대보다 작은 사람은 늘이고,
큰 사람은 잘라내곤 했습니다. 그의 침대에 눕혀지는 순간 사람은 불구가 되거나 죽는다고 보아야 합니다.
그런데 언제나 신화는 옛날이야기가 아니라 바로 지금 우리의 이야기임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는 마음에 저마다의 침대를 하나씩 가지고 있습니다.
바울의 적대자들은 그 침대를 가지고 바울의 키가 크다느니 작다느니 말했습니다.
목회자들 가운데는 신학이 아니라 경영학이나 통계학을 자기 전공으로 삼는 이들이 많습니다.
그들은 목회의 성공여부를 교인수와 예산규모를 가지고 평가합니다.
그런 평가에 익숙해진 사람들은 그 기준에 맞추기 위해 진력을 다합니다.
그러니 존재의 내적 변화를 추구하기보다는 외적인 활동을 더욱 중시하게 됩니다.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사람 수의 많고 적음은 그렇게 중요한 문제가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복음 안에서 삶이 변화 되었는가 아닌가가 중요합니다.
바울 사도는 사람들이 내세우는 객관적 기준을 신뢰하지 않습니다.
그가 스스로에게 다짐하는 것을 간략하게 세 가지로 요약해 보겠습니다.
첫째, 그는 하나님이 정하여 주신 한계를 벗어나려 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은 바울을 이방인의 사도로 세웠습니다. 그는 그 직무에 충실했습니다.
남이 하는 일이 근사해 보인다고 하여 그것을 넘볼 이유가 없습니다.
각자에게 위임된 일을 성실히 수행하면 됩니다. 그러다보면 하나님이 새로운 자리로 인도하실 수도 있습니다.
바울 사도가 고린도에 이른 것도 지경을 넓혀주신 하나님 덕분입니다.
그는 다른 사람이 닦아 놓은 터전 위에 집을 짓는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바울은 늘 개척자의 마음을 가지고 살았습니다.
하지만 그는 자기 일을 주도하고 계신 분이 하나님이심을 한 순간도 잊지 않았습니다.
둘째, 그는 자기가 이룬 성취를 떠벌리지 않았습니다.
‘공성이불거功成而弗居’라는 말이 있습니다.
공을 이룬 후에는 그 자리에 머물지 않는다는 말입니다.
그래야 누추해지지 않습니다.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남이 알아주지 않아도 화를 내지 않습니다.
‘나는 날마다 죽는다’(고전15:31)고 말한 이가 어찌 자기 영광을 구하겠습니까?
"그는 흥하여야 하고 나는 쇠하여야 한다"(요3:30)고 말했던 세례자 요한의 마음이 그러했을 것입니다.
이 마음을 잃어버리는 순간 우리의 영적 추락이 시작됩니다.
셋째, 바울은 사람의 칭찬이 아니라 하나님의 인정을 구했습니다.
세상 모든 사람이 우리에게 박수갈채를 보낸다 해도 하나님이 고개를 저으시면 그는 실패자입니다.
하지만 세상 사람들의 눈에 뜨일 만한 일을 하지 못해도 하나님이 고개를 끄덕이시면 그는 잘 산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세례를 받고 뭍으로 올라오실 때 하늘이 열리고 이런 소리가 들려왔습니다.
"너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다. 내가 너를 좋아한다."(막1:11).
이 한 마디를 들을 수 있다면 얼마나 행복할까요? 정말 잘 산다는 게 뭘까요?
저는 우리가 만나는 사람들 속에서 가장 선하고 아름다운 것을 불러내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김기석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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