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가 자식을 긍휼히 여김 같이
여호와께서는 자기를 경외하는 자를 긍휼히 여기시나니
이는 그가 우리의 체질을 아시며 우리가 단지 먼지뿐임을 기억하심이로다” (시 103:13-14)
하나님은 당신을 완전히 이해하신다. 당신의 인간됨을 철저히 알고 계신다.
하나님은 당신이 무엇에 의지하여 살아가는지 아시며, 당신의 잘못, 두려움, 실패, 낙심을 아신다.
하나님은 당신이 슈퍼맨이 되기를 기대하시지 않는다.
부모라면, 자녀가 성장하는 매 순간에 자녀를 사랑할까 아니면 자녀가 부모를 사랑할 만큼 성숙해질 때까지 기다릴까?
요지는, 하나님은 당신이 성장하는 매 순간 당신을 사랑하신다는 것이다.
따라서 당신은 해결되지 않은 죄나 비현실적인 기대를 갖지 않아도 된다. 다음을 이해하는 것이다.
- 당신이 하는 그 어떤 것도 지금 하나님께서 하시는 것보다 당신을 ‘더’ 사랑하시게 만들지 못한다.
- 당신이 하는 그 어떤 것도 지금 하나님께서 하시는 것보다 당신을 ‘덜’ 사랑하시게 만들지 못한다.
하나님의 사랑은 무조건적이다.
그것은 당신이 ‘하고 / 하지 않고’에 달려 있지 않다.
성경은 이렇게 가르친다.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롬 8:1)
무슨 뜻일까?
예를 들어 내가 한 장의 카드에 그간 잘못한 것을 일일이 적는다고 해보자. (물론 카드 한 장으론 부족할 것이다)
나는 내 모든 죄와 잘못, 실수, 나만의 추악한 비밀, 수치스러운 행위, 생각, 기억, 그리고 유혹 등을 모조리 적는다.
그리고 그 카드를 책에 넣고 덮는다. 카드는 더 이상 볼 수 없다. 책만이 보일 뿐이다.
예수님이 우리 삶 속에 계실 때, 하나님은 바로 그러한 방법으로 우리를 바라보신다.
하나님은 더 이상 우리 죄를 보시지 않는다. 우리 삶에 역사하시는 예수님을 보시는 것이다.
내가 그리스도께 가서 “주님, 여기 제 삶이 있습니다. 제가 그 동안 잘못 행한 것, 실수했던 시간들,
그간 저지른 어리석은 일들이 여기 있습니다. 제 삶을 주님께 맡기고 싶습니다.”
이렇게 말할 때, 주님은 그분의 사랑으로 나를 감싸시고, 하나님은 주님을 보시고 주님이 완전하신 것을 보신다.
하나님께는 내 죄가 보이지 않는다.
하나님의 은혜 안에서 안심하는 것은 바로 이것을 뜻한다.
다음에 대해 이야기를 나눠보자.
내게는 세 자녀가 있다. 이들 모두가 걷는 법을 배워야 했는데, 셋 모두가 동일한 과정을 거쳤다.
그들은 발을 떼고, 넘어지고, 다시 일어나고, 두 발자국을 떼고, 또 넘어졌다.
걷기 전에 일어나고 넘어지는 과정을 반복했다.
부모로서 내 반응은 어땠을까?
꾸짖었을까? 당연히 그렇지 않다! 그건 얼마나 어리석은 말인가!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이 우리를 그렇게 다루신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넘어질 때마다 하나님이 “일어나! 뭐 하는 거야, 이 바보!”라고 말씀하신다고 생각한다.
하나님의 은혜를 아는 지식 안에서 안심하며 평안히 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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